살맛·술맛나는 세상!

살맛·술맛나는 세상!

사석원

새벽 4시. 일찍 해가 뜨는 한여름. 그러나 세상은 아직 미명. 이불 속에서 눈을 뜬 채 일어날까 말까를 망설인 지 벌써 30여 분. 더 이상 우물쭈물할 순 없지. 드디어 불끈 결심.

조용히 옷을 챙겨 입고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집을 나선다. 이거야말로 영락없는 조강지처 몰래 첩질하러 가는 난봉꾼 본새. 그렇게 어둠을 뚫고 달려간 곳은 애첩의 집이 아니고 한강변 ‘노량진 수산시장’.

생선 냄새가 입구부터 진동한다. 주차장은 전국의 어판장에서 올라온 수산물 트럭으로 이미 만차. 시장 안은 깜깜한 바깥 세상과는 딴판으로 휘황찬란 불야성. 700여 개 좌판마다 엄청난 양의 각종 어패류와 가득 찬 인파들이 상인들과의 흥정 소리에 섞여 웅웅 대며 꿈틀거리는 것이 틀림없는 징한 삶의 현장이고 노동의 찬가다. 볼 적마다 가슴 벅차고 흥분되는 풍경. 정글 같은 도시에 답답한 내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 바로 이 맛이다. 33년 전부터 수산시장을 찾고 있으니 그런 기분에 중독된 지도 이미 오래전. 즐거울 때나 우울할 때나 이곳을 찾아 위안을 얻었다. 그야말로 자유와 활력의 충전소, 내 마음의 해방구로다.

질척거리는 시장 바닥을 익숙한 발걸음으로 재빨리 지나가면서 좌판에 놓인 수산물들을 예리하게 훑어 가는 눈썰미가 거의 전문가 수준. 오늘은 물 좋은 생선이 뭐고 가격이 어떤지 단박에 감이 온다. 지금은 7월 초순. 반짝이는 병어와 애기 키만 한 민어가 제철. 철 지난 줄 알았던 갑오징어도 제법 눈에 띄고, 경매장엔 아직도 열기가 뜨겁다. 4㎏이 훌쩍 넘어 보이는 살아있는 대형 자연산 광어들과 전복, 빛깔 좋은 복어와 숭어 등을 놓고 중개인들의 눈치 작전이 치열하다. 눈빛들이 매섭다. 찰랑찰랑 가득히 물을 채우고 활어들을 담은 노란색 플라스틱 생선 상자가 바닥에 잔뜩 깔린 채 주인을 기다린다. 물고기들이 답답하다며 텀벙거리자 사방으로 물이 튕긴다. 어떤 놈들은 물총을 사정없이 찍찍 갈겨대고 어항에서 죽기 살기로 뛰쳐나온 횟감용 활어들은 시장 바닥에서 팔딱팔딱 몸부림치며 ‘아이고 나 죽네’를 외친다. 뜻을 알 수 없는 수화와 경매 용어는 사교도들의 비밀스러운 의식처럼 기묘한 느낌으로 귓전만 맴돌고, 생선과 소금과 얼음 실은 수레들은 연신 인파들을 뚫고 지나가고, 여긴 시방 뭐시냐 하면 겁나게 거시기한 아수라장. 하지만 비탄과 절망으로 가득 찬 지옥 세계가 아닌 우울함과 무료함은 발 붙일 곳이 없는 삶의 열정과 내일에의 희망으로 넘쳐나는 생명의 광장. 그러는 사이 새로운 하루가 이곳 노량진 수산시장으로부터 열리려 한다. 시나브로 서울의 모습이 장엄한 표정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형님, 싱싱한 회 좀 떠가시죠.” “사장님예, 오늘 자연산 광어 쥑입니더.”

여기저기서 들리는 상인들의 애원들을 애써 모른 체하며 곧장 달려간 곳은 수산물 상회 제19호 ‘공주집.’ 활어를 팔고 즉석에서 회를 떠주는 곳. 나의 17년 단골집이자 친구인 김동민이 일하는 가게다. 그는 헤이룽장성(黑龍江) 무단(牧丹)강 출신의 조선족. 1995년 한국에 처음 와서 일할 때부터 나와 인연을 맺었다. 

지금은 한국 국적도 취득해서 중국에 있는 가족들도 모두 한국으로 데려왔고 안양에 작지만 자기집도 마련한 그야말로 성실남. 동민은 이주생활 17년 내내 여기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생선회 뜨는 일을 했다. 그것도 밤 7시부터 아침 7시까지 근무하는 야간조에서만 일했다. 고단과 실망이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녔으나 결코 희망을 포기하진 않았다. 지금은 고생의 대가로 남부럽지 않을 만큼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그의 미래이자 자존심인 아들이 벌써 대학교 2년생. 뿌듯한 인생의 행로다.

요리를 맡겨놓고 식당 이모들께 선물할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다가 또 다른 단골집인 문어 할머니 전명숙(66) 여사님을 우연히 만났다. 원래는 맨 끝줄 코너가 할머니네 자리였는데 얼마 전 바뀌었다. 노량진 수산시장은 1년에 한 번 추첨을 통해 자리를 새로 배정받는다. 그러니깐 매년 자리가 바뀌는 셈. 최근에 뽑기를 다시 해서 가게 자리가 옮겨진 것.

화들짝 반가워하신다. 얼마 전 있은 내 전람회에 관한 신문기사를 보고 여사님이 화랑으로 친히 축하전화까지 주셨다. 참으로 감사한 일. 서울역 시장, 염천교 시장이라고도 불린 옛 뉴서울 극장 자리에 있었던 시장부터 지금껏 40여 년을 오직 생선가게만을 하셨다. 고생한 덕에 2남1녀를 반듯하게 기른 자랑스러운 어머니다. 지금은 주로 문어와 대게, 킹크랩, 전복들을 취급. 난 꼭 이곳에서 살아있는 동해산 문어를 산다. ‘장군문어’ 등 연조 깊은 노량진 수산시장의 명문 문어 전문점들과 함께 전 여사님의 수산물상회도 좋은 문어를 많이 취급해 단골이 된 지 오래고 의리상 여사님과만 거래한다.

여사님은 명절만 빼고는 매일 새벽 1시 반에 출근해 경매에서 그날 장사할 물건을 사고 오전 10시까지 일하고는 큰손주에게 자리를 넘긴다. 만난 기념으로 문어 두 마리를 샀다. 8만 원. 5000원 깎아 주신다. 4㎏쯤 되는 때깔 좋은 강원도 피문어. 꽃미남처럼 잘생겼다. 문어가 피를 맑게 해준다던데 분명 내 피는 깨끗해질 것이 확실하니 이래저래 기분이 좋도다.

또 한 사람의 친구를 소개하고 싶다. 예천상회의 이현철이다. 회 뜨는 솜씨가 경지에 다다른 그 역시 내 오랜 단골. 동민과도 친구인 그는 낮에만 일한다. 돈 많이 벌어 내 그림을 사고 싶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파이팅 이현철!

얼큰한 해물찜에 문어 숙회까지. 온통 술안주로구나. 어느덧 해가 중천에 떴지만 어쩌겠나. 이처럼 화려한 안주에 한잔의 의례를 아니한다면 한량의 자세가 아니다. 도리 없이 주(酒)님을 모셔야지. 하루를 술 한잔으로 시작하니 내 팔자도 썩 괜찮은 팔자다. 어서 가자. 마누라가 차려주는 술상이 있는 내 집으로.

가는 길 좌판마다 생선들이 줄 맞춰 도열해 있다. 고등어와 아귀 한 무더기가 5000원. 속초 꽁치도 5000원, 밴댕이 1㎏ 7000원, 황석어 2㎏이 5000원, 제주갈치 6마리가 1만 원. ‘싸다 싸! 참 싸다’를 중얼거리며 시장을 나온다. 눈부시게 빛나는 둥근 해가 날 바라보며 활짝 웃는다. 집 가는 길이 내 가슴속처럼 시원하게 뻥 뚫렸다. 노래가 저절로 흥얼흥얼.

“쿵짝 쿵짝 쿵짜작 쿵짝 네박자 속에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네 한구절 한고비 꺾어 넘을 때 우리네 사연을 담는 울고 웃는 인생사 연극 같은 세상사 세상사 모두가 네박자 쿵짝.” 아앗싸~ 살맛 나고 술맛 나는 세상이로다!

난 그가 좋다. 괜히 좋다. 말수가 적은 동민. 그러나 괜스레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 그의 한결같은 순박함과 성실함에 난 매료됐다. 그를 만나면 늘 편안하고 고마운 생각이 드는 것이 어쩌면 전생부터 깊은 사이였는지도 모르겠다. 작고 여린 체구의 그에겐 얄팍하지 않은 대륙적인 풍모가 있다. 장사를 하면서도 작은 이득에 가볍게 처신하지 않는 그를 보며 난 늘 부끄러워했다. 그런데 그가 안 보인다. 

물고기들만 어항 속에서 동그랗게 눈을 뜬 채 속절없이 왔다 갔다 헤엄친다. 넙치들은 복지부동 자세로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눈치를 살피고 있고. 어찌된 영문인가 전화를 걸자 동민은 집에서 2012유로축구를 보며 쉬고 있다. 장사가 덜 되는 여름철엔 일주일에 한 번꼴로 오늘처럼 휴가. 할 수 없구먼. 마실 가듯이 설렁설렁 중앙식당으로 걸어갔다.

중앙식당은 손님들이 사온 해물을 원하는 대로 요리해 주기도 하고 초장과 음료를 제공하고 초장비 명목으로 1인당 3000원씩 자릿세를 받는 이른바 초장식당. 노량진 수산시장에는 미자식당, 유달식당, 충남식당, 별장식당 등 전통 있는 초장식당들이 즐비. 모두가 맛있고 연조가 깊은 곳들이지만 난 주로 중앙식당엘 간다. 왜냐면 거긴 친절한 선화 이모가 있기 때문. 랴오닝성(遼寧) 선양(瀋陽) 출신의 조선족인 선화 이모는 올해 나이 서른 아홉. 이팔청춘은 아니나 서글서글하고 예쁜 눈매의 이모는 쾌활하면서 은근히 부끄럼도 잘 타고 인정도 넘치는 노량진 수산시장의 내 여친. 그녀 역시 동민처럼 저녁 7시부터 아침 7시까지 일하는 야간조다.

13년 전 한국에 온 이후 그녀도 줄곧 이곳에서 일했다. 같이 있던 남편은 5년 전 불법체류자로 걸려 중국으로 송환됐다. 중국엔 6살 된 아들을 친정엄마가 돌보고 있다. 한국에 와있는 조선족 동포들 중 사연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모두가 저마다의 가슴 시린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있을 터. 이모는 시누이랑 인천 동암에 2500만 원 주고 전셋집을 얻어 그런대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단다. 어서 돈 벌어 고향으로 돌아가 남편과 아들과 오손도손 함께 살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비자 갱신 때문에 7월 중순부터 3개월간 중국에 가야 하는 이모는 아들 볼 기쁨으로 한참 전부터 들떠 있었다. 

어, 이모가 나와 있네. 선화 이모가 1층 식당 입구 문 앞에 앉아 있는것이 아닌가. 식당은 지하에 있기 때문에 이모가 거기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 이모도 내가 갑자기 나타나자 호들갑. 나 역시 퍽이나 반가웠음은 물론. 그러나 체면 때문에 내색은 하지 않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집에 요리를 뭘 해가면 좋을까를 능청스럽게 물었다. 내심은 손이라도 덥석 잡고 싶었다. 하나, 너무 솔직하면 세상살이가 힘들어지니 적당한 생활 연기는 필수다.

이모가 해물찜을 권한다. 수산시장에서 이것저것 생선들을 잔뜩 사가면 사람 좋은 우리집 마누라는 물론 군말없이 손질해서 요리해 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는 미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생선 손질이란 것이 꽤나 성가신 일. 비린내를 참고 가시며 내장이며 머리며 비늘을 정리해서 깨끗이 씻고 보관하고 할 일이 참 많다. 이를테면 도루묵 한 상자가 40마리인데 그걸 다 손질하려면 어지간히 귀찮을 것이 당연지사. 그런데 난 가끔 아무 개념 없이 상자째 생선들을 사가지고 희희낙락거리며 귀가하기 일쑤. 너무 사기 때문에 충동구매한 결과다.

그래서 요즘 들어선 아예 식당에서 요리를 해가기도 한다. 또 여긴 탕이나 찜에 들어가는 다대기 양념을 직접 만든 후 며칠간 숙성해서 요리하는데 일반 가정집에선 그처럼 깊은 맛을 내기가 쉽지 않다. 새우, 전복, 백합, 산낙지, 가리비, 미더덕 등을 넣고 콩나물에 고춧가루 듬뿍 뿌려 벌겋게 찜요리를 할 요량으로 선화 이모랑 난 식당 옆 태성상회에서 각종 해물들을 5만 원어치 샀다. 이 정도면 열 사람은 족히 먹을 수 있는 푸짐한 양이란다.